햇살이 수줍은 웃음으로 밤새내린 서리꽃에
마주서니 사르르르 녹아드는 서리꽃이 한점 물방울이 된다.
오늘 아침도 오싹하니 춥더니만
다행이다. 이렇게 해가 나서..
어제는 흐렸지만 오늘은 맑음이고 내일은 또 비가 온다지..
참...알수 없는 날씨의 변화들이다.
나는..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선 새끼손가락 손톱만큼의
결벽증이 있다.
17일 아이들 학원비며 이런저런 것들을 이체 시켜야 하는 날..
낮에는 바빴고, 저녁에라도 365코너에 가서 어떻게 해보려 했는데
우리집 남자가 내일 그러니까 18일 아침에 보내라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어제 아침..
간만에 기다리는 버스가 빨리 나오지 않아서리...
저녁에는 꼭 이체 시켜줘야지 했지,.
그리곤..
저녁에 아이들 마중 나가는 시간보다 20분쯤 빨리 나갔다.
농협에서 이체시키고 차 돌려서 조금 기다렸다가 아이들이랑
같이 돌아오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근데 왜 이리 꺽정스러운거야. 차 돌려 농협까지 가는것도 꺽정스럽고..
으슥한 한밤중에 농협에 들어가는 것도 겁나고..
이런 저런 별 생각이 다 들어서 그냥 기다릴까...하다가
20분이나 빨리 나와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생각에
뭐 별일 있겠어 싶어 농협 앞으로 갔다.
마악 365코너 문앞에 섰는데 안에서 무슨 안내방송 소리가 들린다.
'뭐야..' 생각했지만 별 생각 없이 밝은 불이 밝혀져 있는 현금지급기 코너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띠이 띠이 띠이...'
뭐지? 뭐야. 어리둥정하는 사이..
'열시 30분에 자동적으로 이곳 문이 닫히고 영업이 종료 됩니다. 안에 계시는
분은 서둘러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문이 닫히면 다음날 아침에나...'
서둘러 출입문을 잡아 당겼지만...이미 잠긴상태
방송에서는 어서 서둘러 나가라는 맨트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난 이미 갇힌거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공포. 이 안에서 내일 아침까지...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마악 피어 오르기 시작할 즈음..
불쌍한 나를 인자하게 감싸고 있는듯해 보였던 불빛마져 꺼저 버리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갸~ 나 큰일 났어.'
잠결에 화들짝 놀란 우리집 남자.
'왜?'
'나 애들 학원비 넣어준다고 했잖어. 거기 현금지급기 코너에 갇혔어.......'
'아이구. 어쩔래. 좀 기다려봐.'
그리고도 한참..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도 통화중..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엔 이미 늦은 시간..밤 10시 30분이 넘은 시간..
괜찮겠지. 괜찮을꺼야. 농협에 아는 사람도 있고, 경비업체에 전화하면..
무슨 방법이 있겠지.....마음을 다스리고 있을때 남편으로부터 구원에 전화가 왔다.
'어. 금방 경비업체에서 갈꺼야. 조금만 기다려.'
'어떻게 했어.?'
'그 형님 있잖어. 농협 상무님께 전화 했지. 바로 처리해 준다고...'
전화 끊고 기다리는데 그 기다림은 또 왜그리 지리하기만 한지..
한참 뒤..다시 울리는 폰벨..
'왔냐?'
'아니. 아직..'
'형님 전화 왔던데 거의 도착했을꺼라고.'
'아직 안왔어. '
'조금만 기다려 봐. 금방 갈꺼야. 안오면 다시 전화 하고...'
전화를 마악 끊고 나니 농협을 돌아 나오는 불빛 하나...
몇십년만에 만나는 짝사랑이 그리도 반가울까..
'놀라셨지요~'
'아 예. 죄송합니다. 늦은시간에..'
'뭔소리 마악 안나던가요?'
'제가 마악 들어가니까 경보음처럼 띠이띠이 하면서 방송 맨트가 나오길래
나오려고 했는데.... 고맙습니다. 늦은 밤에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구요.'
'아닙니다. 그럴수도 있지요. 조심해 가세요~'
바깥 밤 공기가 이렇게 좋구나...라는 사실...
한밤의 작은 소동은 그렇게 해서 끝이 났다.
학원비 그것을 자동이체를 시키던지 해야겠고...
밤 10시 30분 이후엔 자동으로 문이 잠기니 안에 들어가지 마세요~ 하고
커다랗게 써서 붙혀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
영업시간이라는 글씨는..
저 발밑 그자리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혀 있을 뿐이였다는..
내 불찰이긴 하지만..
간이 철렁 했던 순간이였다.
폰이 없었다면...
남편이 연락이 되지 않았더라면...
농협에 남편이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생각만으로도 두렵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아직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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