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11

조금만 더 기다릴껄..

그냥. . 2011. 1. 8. 23:28

동화같은 드라마를 보고

눈물 찔끔 흘릴 수 있는 나는

철없음인가 아직 소녀적 감성을 누리고 사는 사람인가..

그것도 아님 누구나가 다아 느끼는 명연기에 빠저들어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는 보편적인 아줌마인가..

동화같은 드라마를

동화처럼 아름답게 표현하는... 연기들을 보면서

다음..내일 방송시간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

제발..

슬픈인연은 아니였으면...하는 바램까지 보태면서 말이다.

시크릿....가든..

 

저녁 여덟시쯤 전화가 왔다.

동네 형님네서 모임 중이신 우리집 남자..

하루종일 보일러 고치는데 밖에서 종종거리며 심부름을 한 탓에 컨디셔도 별루고 해서

집에 가야겠다고 데리러 오라는 전화였다.

같은동네라도 거리가 좀 있는 집이라

과장을 좀 하자면 골목 골목이 미로같은 골목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차 한대 겨우 들어갈만한 골목..

거기다 오른쪽으로는 초등학생 키만큼의 깊이에 논과 밭인 그곳..

골목 한쪽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했다.

남편이 받을 줄 알았는데 왕형님벌 ㅎ..그분이 받으셨다.

들어오란다. 날도 추우니 들어와서 기다리란다.

여차저차 해서 운전 실력이 부족해서 골목에 주차하기가 어려우니

말씀 전해달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기다리기를 몇분..

워낙에 복잡한 골목인데다  운전으로는 낯설은 길...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차가 한대 들어온다.

어쩌지...싶은것이..

겨우 겨우 후진하고 전진하고를 반복해서 그 차가 지나갈 공간을 마련해 주고..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 차는 저만치 대문앞에 차를 대고는 라이트도 끄지않고

가만...있다.

동네 사람인가?

저아주머니댁 누군가? 싶었지만 알 길이 없고....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데 멀리서 남편이 씩씩거리며 걸어 오더니

'전화해서 엎었잖어.' 한다.

'뭘? 뭘 엎어?'뭔소린지 알수 없어 되물었지만..

'니가 전화 해서 전화 받느라 압력솥을 통채로 엎어 버렸다고.'

'왜? 뭔데..'

'뭐긴 뭐여. 닭 삶은거지...빨리 나아 같이 치우게..'

뭔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차에서 내려 남편 뒤를 따라가 보니

멀지 않은곳이 압력솥 하나가 뒤집어져 있고

잘 삶아진 닭고기들이며 대추 마늘들이 땅바닥에 내팽계처져 있는 모습이

가로등 불빛아래 들여다 보인다.

손으로 쏟아진 것들 담아내고, 나머지 흔적들은 그집 마당에서 빗자루 찾아

깨끗히 쓸어내고 차에 올라 돌아오는길..

'아이...씨이..형님이 한마리 남았다고 나만 싸줬는디 니가 전화 받으려다가

엎었잖어. 쬐끔만 더 기다리지 그것도 못기다리고..어쩌고 저쩌고...'

술한잔 들어간 김에 짜증이 늘어진다.

그러는 사이 반대편에 라이트 켜도 서있던 차는 얌전히 차 한쪽에 잘 대놓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사라졌다.

낯선 차가 골목을 서성거리고 있으니 이상해서 지켜보다가

우리부부 하는 꼬라지가 하두 우스워 그냥 들어가 버린 모양이다.

어쨋건....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토종닭 한마리는

길고양이에게 선물하고...

투덜거리던 우리집 남자 몇마디로 화제를 다른쪽으로 돌려

금새 기분 풀리게 하고나니

아깝다는 생각....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솥단지는 엎어졌고, 토종닭 한마리는 길고양이에게 선물하고 난 다음인걸..

 

그런데 문제 하나...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는 그집 언니네 압력솥 손잡이 한쪽이 없네..

원래 없었던건지..아님 아까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진건지....

만약에 아까 깨진거라면..

토종닭 한마리 길고양이에게 선물한걸로 끝나지 않을꺼라는 거다...

토종닭 몇마리 값이 사라진 압력솥 손잡이 따라 가겠다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빠이 빠이~ 할지 모를 일이다.....

ㅎ...

1분만 참았어도 좋았을껄..싶지만

압력솥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 졌고..

손잡이의 행방은 그집 언니에게 확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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