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피곤함에 눈으로 먼저 찾아드는 건
그냥 지난번에 병원 다녀온 뒤의 느낌일 뿐일까?
엄마 대학병원 치과 진료상담 보고 왔다.
엄마가 동네 아침 첫차로 나와서 시외버스타고 터미널 이 도시 와서
택시 타고 대학병원 오는 동안 나는
늑장 부릴 것 다 부리고 씻고 커피 한잔 마시고 병원으로 갔는데
치과병원은 처음 방문이라 주차장이 따로 있는 거 몰라
살짝 돌아서 들어가고, 주차하고 한참 돌아서 병원 앞에서
전화하니 엄마는 벌써 병원 진료과 앞에 앉아 있단다.
운전 중일까 싶어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렇게 불량 딸내미 걱정이 늘어지는 엄마..
이래저래 이래 저래 치료 과정을 설명 듣고,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의 결정은
다음 예약 날짜까지 미루기로 하고..
그 중간에 언니 전화 오고 동생 통화하고...
다음 달에 예약 날짜 잡았다.
내 보기에는 정말 한가해 보이는데 예약이 꽉 차 있다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발짝 떼었으니
마음은 좀 가볍다.
예약 시스템이 잘 되어 있나 봐 붐비지 않아서 좋더라고..
점심때 다 되었는데 그냥 가겠다고 그러실까 봐
나 아침 안 먹어 배고프다고 해서
죽집 찾아 삼천 보 하다 못 찾아서 큰아이한테 전화해서
병원 근처 죽집 찾아달라 해서 가서 같이 죽 먹었다.
저렇게 잘 드시는 걸..
내 알기로는 아마도 엄마도 아침을 건너뛰고 오시지 않았을까...
한 그릇 포장해서 걱정이 늘어지는 엄마..
다시 주차장 차 있는 데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만만찮아서
택시 잡아 시외버스 터미널 가시게 하고
집에 들어왔다.
멍....
고난도 정신집중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멍한 피곤함이 밀려들었다.
동생하고 통화하고.. 시원스럽게 전혀 부담 갖거나 꺼리지 않고
협진 확인서 받아 오겠다고 예약 잡는 동생도
믿음직하고
언니도... 통화하고 나니
머리가 좀 가볍다..
내 작은 꽃밭에도 가을 햇살이 눈 부시고
그네에 누워 파란 하늘 바라보며
살랑이는 바람에 실려오는 가을 냄새 맡는 게 나는 너무너무 좋은데..
쫌.. 어지럽기는 했지만
그 쫌 어지러움의 원인인 그네의 흔들림이
우리 집 멍뭉이는 불편했던 모양이다.
멍뭉아~ 나 여기 이렇게 누웠는데도 너는 불안하구나...
왜 불안해? 하고 물어도 여전히 멍뭉이가 불안해해서
안고 들어왔다.
멍한 머리는 좀 있으면 가벼워질 것이고..
남편도 전화 와서 진행 상황 물어주고...
이렇게 협력이 잘 되는 집안 있음 나와보라 그래~ 하고 싶은
뿌듯함...
내가 멀쩡해서..
엄마를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 수 있었음
더없이 좋았겠지만..
증상이 발현한 숫자보다는..
그 증상이 만들어 낸 트라우마가
내 발목을 잡는다.
아니.. 운전이 가끔 무섭고 그걸 알고 응원해주고 이해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위로가 된다.
더없이 좋은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아직 덜 여문 여물어야 할 것들을 위해
열 일하는 햇살이
내 멍한 머리도 바짝 여물게 해서 좋은 생각만
즐거운 기분만 찾아 기억하고 계획하고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었면 좋겠다.
엄마는..
걱정 안는다.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뭔들 안 되겠어.
엄마만 건강하게 있어준다면야 뭐가 걱정이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