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아주 오래된 사진이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이날은 비가 잠깐잠깐씩 내리는 가을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을 바닷가에 서서
같이 갔던 사람들 보다 바다가 더 좋아 바다만 찍어댔던 기억 있다.
대부분 어디론가 사라지고 몇 안 남은 이사진은
가끔 동해가 그리운 날이면 물끄러미 바라 보고는 한다.
아니 내 폰 배경화면으로 10년 넘게 날마다 시시때때로 들여다보고 있다.
내 폰에 이 사진이 안 들어 가 있으면 뭔가 내 폰이 아닌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저 사진 속에 하늘이 더 맑았으면 어땠을까? 바닷물은 다른 색이었을까?
싶은 생각도 가끔 했었다.
바다는 하늘을 닮아간다는 말... 맞는 것 같다.
4~5년 전쯤인가.. 친구들 모임에서 부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일곱 친구와 우리를 픽업하러 와 주신 분과 그의 아내 분 이렇게
여럿이서 광안리 밤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맥주 한잔 할 때 일이다.
친구가 옆에서 바다 좋아하는 애 여기 있지. 얘 바다 엄청 환장해~
하고 너스레를 떨어주니 내 친구 친구의 남편이 물었었다.
어떤 바다가 좋으냐고....
파도가 있는 바다를 좋아해요.. 파도가 좀 많아 시원한 느낌의 바다가 좋더라고요 했다.
어떤 바다? 처음 듣는 물음이었지만 나는 바로 대답했던 것 같다.
파도가 있는 바다 그럼.... 하며 그분이 어딘가 바다 이름을 이야기했었던 것 같은데
그 이름은 떠오르지 않지만
참 엉뚱한 질문에 엉뚱한 대답 아닌가..
파도가 없는 바다도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후었다.
그럼에도 그분이 공감해 주었던 것은 바다가 있는 도시에 사는 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시절 잠깐 다니던 교회오빠...
어찌어찌 얼킬 뻔도 했었던... 그렇지만 그땐 이미 나는 남편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었지.
오랜만에 뵈었는데 친구의 친구는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였지만 친구의 친구이니
편안했고, 그분도 반갑고 고맙기도 했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내 친구들이나 내 남편이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동질감..
25~6년 만에 그분이 던졌던 어떤 바다가 좋아요?라는 물음이
가끔 바다를 보면 떠오른다....
어떤 바다?
노을이 짙은 바다.
어떤 바다?
눈이 펑펑펑 쏟아져도 다 삼켜 버리는 바다..
어떤 바다?
그냥... 다 받아주고 안아줄 것 같은 평온한 바다..
어떤 바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며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있는 바다.
어떤 바다..
숨어들고 싶은 나를 잊게 해 줄 것 같은 무섭고도 대단한 바다
어떤 바다?
그냥 바다..
그냥.. 바다... 바다가 보고 싶다.
동해 바람은 어떤지 느껴본지가 너무 오래됐다.
오늘 정말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남편 스웨터를 완성했다.
바늘 크기를 잘못 선택해서 뜨다가 풀었고,
게이지를 안 내고 그냥 하다가 또 풀었고,
목부분이 이쁘지 않아 또 풀었고...
풀고 풀고 또 풀고 또또 풀고....
뜨개는 해도 해도 어렵다.
실 특성에 따라 패턴에 따라 들어가는 실 양도 달아지기도 하지만
옷의 신축성이나 게이지까지 확실히 달라지기 때문에 어렵다.
처음부터 패턴 게이지 고무 뜨기 게이지를 내어서
철저하게 시작했더라면 푸르시오를 그렇게 반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이함이 한몫했다.
옷을 내가 몇 벌이나 떴는데 하는 자만..
그렇게 뜨다가 풀고 또 뜨다가 풀어내고 그러다 완성이 되었는데
어제 잘못 주문한 단추를 다시 주문하고...
뭔가 남편 입혀봐야 하는데 불안한 거야..
하도 푸르시오를 반복했고,
시간도 오래 걸려 떴는데
무늬 하나는 정말 그럴싸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안..
그래도 입혀봐야지 않겠어.
저녁 먹으러 나간 남편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소매가 좀 짧게 떠진 것 같아서 한쪽 고무 단을 마약 풀었는데
남편이 들어온다....
한 번 입어 볼래요? 했더니
입어보며.. 오우 괜찮은데... 하는데
나름 괜찮네.. 풀지 않은 한쪽 소매도 남편 손목에 딱 맞게 안착하고...
에이... 안 풀어도 되었는데 짧은 것 같아서 풀었더니...
풀어낸 고무 단 다시 떠서 마무리하고
집에 있는 단추 달아 놓으니 옷 같다.
나머지는 단추 오면 달면 되고..
이제 빨았을 때의 변화다.
별 변화 없는 실이라고는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아서 많이 수축되는 실을 본 경험이 있는지라...
이것도 사실 게이지 내어서 빨아봤더라면 별 걱정 안 해도 되는 부분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개 게이지라는 것이 신축성이 워낙에 많아서
수축되는 부분까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은 부분 있는 게 사실이기는 하다.
그래도 내일 빨아서 말려 봐야지..
실이 남았다.
남자 스웨터 뜨기에는 조금 모자랄 것 같고...
조끼나 하나 떠서 아들 줄까.. 그러고 있다.
사실 남편 스웨터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가서 다시 남자 스웨터는
좀 피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왜 다 완성하고 나면
더 허전하고 손이 더 심심하게 느껴질까?
밤에도 가끔 손이 아무것도 안 하는 날 종종 있는데 말이다.
이른 저녁에 뜨개가 완성이 되고 나면
괜히 뭐 해야 할지 몰라하는 것처럼 손이 허전해서
다시 또 뭐 뜰까.. 하고 고민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커튼 떠야 하는데.. 커튼은 대바늘 뜨기의 계절이 지나가는 시점에
다시 패턴 찾아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바다 꿈을 꾼다.
집 근처에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꿈..
걸어서 바다를 보러 가는 꿈..
아마도 내 꿈속에 바다는 저 사진 속의 바다랑 비슷한 것 같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꿈에서도 저 바다 본지가 좀 된 것 같다.
바다가 꿈에 보였으면 좋겠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걸어서 바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는 바다..
그 느낌의 바다.. 는 좀 덜 애틋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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