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편안한 하루하루(2023)

포근한 날이었다.

그냥. . 2023. 12. 9. 23:14

 
봄날 같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분명 12월의 중간쯤인 오늘..
아무리 날이 포근해도 억새꽃은 반쯤 바람따라 흩어지고
우리 엄마 엉성한 머리숱처럼 빈약하기 그지없는 갈꽃들이 
바람에 먼길 재촉하고 있다.
그렇게도 은빛 반짝이고 예쁘더니 어느새 하얀 새치 머리 같은 
갈꽃들이 바람에 흩어지는 것이다.
날씨 탓인지 기분이 완전 좋으신 우리 멍뭉이 
한 달에 한 번 가면 많이 가는 큰 다리 있는 데까지 산책을 다녀오시면서
한 번도 안아 달라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쉬어 가자며 벤취에도 앉고, 차량통제석에도 앉아 쉬어가곤 했지.
아까..
오전에 사실 미용실에서 일기라고 쓰기는 했는데 밤 시간이 되고 보니
습관처럼 또 앉아 있는거다.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오늘을 보냈으면서 말이다.
예전에 
십 년도 더 오래 전의 블로그 느낌하고는 참 많이 다르다.
여기는
물론 내가 대하는 마음 자세가 아주 많이 다른 것이고 보면
이것도 흐름의 한 방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때도 조용했고, 지금도 조용하지만..
뭔가 다른 조용함..
내가 굳이 공개 일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다른 거 없다.
그냥 누군가 볼 수 있게끔 공개해 놓은 곳이니
어느 만큼은 절제이고 또 어느만큼은 보여주는 글이다 보니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근데 사실 모르겠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일기를 쓰는 이유였는데
절제는 분명 되는 것 같기는 하다.
과한 감정 변화나
과한 세파의 흔들림은 그냥 가슴에 묻는다는 것...
그러나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지는 글쎄 모르겠다.
사실 쓰다 보면 이게 누군가를 의식하며 잘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냥 투닥거리는 일이 더 많기는 하다.
가끔은 솔직히 절절히 다 내어서 이런 일 저런 일 쓰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건.. 그렇게 써 놓은 글은...
자고 나면 후회하게 되는 경우 많고, 가끔은 비공개 처리가 되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 
오래전 일기를 뒤적이다가..
엄청 의미심장한 글을 읽었는데
왜 그렇게 글을 썼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그게 글은 있는데 실체가 없는 거야. 뭐 때문이란 뭐가 빠진 거지
그때도 아마...
나는 소심한 마음에 그걸 다 끄집어 내놓지 못하고
그냥 요동치는 마음만 내려놓았던 거겠지.
웃기다는 생각..
그때는 그렇게 심각했는데..
짚어보고 따져보고 또 날짜 헤아려보면 
혹시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지금은 아무 기억도 못하고 있다는 것..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 아니라..
이 또한 잊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리라라고 해야 하는 것 
같은 느낌..
포장지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사탕 포장지 같다는 생각
이렇게 일기를 쓰는 것이 맞나.
아니 이게 일기인가?
그냥 끄적임 아닌가...
사실 그렇지 일기를 쓰자는 것보다는 그냥 토닥 거리는 걸 좋아하는 거지
그러다 보니
글 소재는 늘 나이고, 내 주변이고, 내 일상이 되는 것뿐인 거고..
근데 참 아이러니다.
지금도 이러는데 한 십 년쯤 후에...
20년 전에 썼던 내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나는 어떨까?
이게 뭐야? 
뭔 쓰잘데 없는 글자들만 이렇게 모아 놓았어! 싶지 않을지 
싶은 우려가 갑자기 생겼다.
공개와 비공개를 적절히 이용하면 되기는 하는데...
그렇게 하기도 했었는데...
좀 묵직한 것들은 피해 버릇 했더니 
그냥 피해 버리는 습성이 생겼나 봐.
결국은...
잎도 꽃도 사그라진.. 뼈대만 앙상한 겨울나무 같은 일기장이 
될지도.... 싶다.
아까.. 산책길에 보았던
동네 입구의 수령을 알 수 없는 느티나무가 생각이 난다.
얼마나 오래 하늘을 이고 바람에게 채찍 당하고
햇살에게 위로받으며 살았는지
나무라기보다는 뭔가... 더 묵직한..
괴물의 표피 같은 느티나무...
잎 지기 전까지는 우람하다 생각했는데
뼈대만 남은 지금은... 울 엄마 손같고, 울엄마 머리칼 같고...
울 엄마 인생 같다 느껴졌다.
흐...
뭐 하고 있는 건지
이야기가 또 삼천포로 빠졌네
이러니 일기가 아니고 낙서장이지..
아무튼 그 느티나무를 보면 뭔가 애뜻한 마음이 든다.
살아 간다는건 사람에게나 나무에게나 만만찮은 일이구나...싶은 탓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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