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곱게도 내리고 있었다.
소복소복 쌓인 눈 위로 바람느낌 하나도 없이
곱게도 내리는 눈은 여느 꽃잎의 날림과는 또 다른 고요함과
처연함이 있어 더 애틋하다.
곱게도 내리는 눈이 가득 찬 거실 창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오늘 작은아이 올라가야 하는데 싶은 걱정과 함께
날이 따듯하다 했으니 걱정 없어... 싶은 마음 곧추 세우며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내 시선을 잡아당기는 창밖에 내리는 눈을 어찌하지 못했다.
겨울아침 눈이 곱게도 내린다.
벚꽃날림하고는 또 달라.. 하며 한없이 멍한 시선을 창밖에 빼얏긴 채였다.
열 시쯤 작은아이 케리어 하나 사다 주려고 나가는데
벌써 도로에는 눈이 다 녹고 있었다.
제주도 여행 간다는 아이는...
작은 케리어가 없어서.. 큰 건 귀찮고 하다며..
어차피 렌트할 거라서라며..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쇼핑백에 옷을 몰아넣어 가지고 왔더라고..
케리어 하나 사지! 했더니..
뭐 바로 차에 넣어 둘 건데.. 하더라고..
그래도 케리어 하나로 정리되면 손도 편하고 좋잖아. 했더니..
알았어.. 하는데
오늘 올라가면 피곤할 거고, 녹은 눈도 얼어붙을 거고.. 싶어서
남편이랑 같이 사다 주었다.
취향이 달라 뭘 사야 하나 사진 찍어 톡으로 보냈더니..
무채색으로.. 엄마 알아서~라는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케리어에 정리해 주고..
먹고 싶다는..
거기도 맛집인가? 늘 손님이 붐비는..
순댓국밥집에 가서 순대국밥 사주며..
너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 복귀하는 날이면 가끔 이거 사 먹고
들어갔는데... 했더니
엄마 나 대학원 다닐 때도 엄마가 서서 얼려서 가끔 보내줬잖아.
한다.
아... 그렇네 그랬었구나..
그때도 맛있게 먹었는데... 하니 뭔가 고맙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아이는 기억해 주는 그런 마음이 그냥 고마웠다.
날 밝고 포근할 때 얼른 가라며 등 떠밀어 보내고....
아이 도착했다고 전화 오고..
남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별 것도 아닌데 아이들 이야기를 하니 울컥한다.
너.. 넌 참 왜 아이들 이야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눈부터 빨개지냐? 한다.
내가 언제..
저번에도 그렇게 그러더니 또 그러네..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녀.. 벌써 눈물 뚝 떨어질라 그러는 구만....
모르겠다.
그냥 애들 생각만 하면 뭉클하고 그냥 그럴 때가 있다.
좋은 이야기도 나쁜 이야기도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가끔 그렇다.
내가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애들에게는 늘 좋은 이야기만 해주자 했다.
늘 내가 하는 말이다.
나 아니어도 세상은 괜히 이유 없이 딴지 걸고 힘들게 하는 일 많은데
굳이 우리까지.. 부모까지 안 좋은 말 하나 숨 하나 보탤 거 뭐 있느냐며..
좋은 것만 보태줘도 모자랄 텐데 그렇게 좋은 것만 좋은 것만 보태며 살자 했다.
그러면서 또 울컥...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남편은 안다.
내가 아이들 이야기할 때면 가끔 이렇게 이유 없이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힌다는 것을..
눈은 그치고 골목은 젖어있다.
아마도 지금은 얼어 있겠지..
멍뭉이가 어깨 쪽에 하네스 걸리는 부분에 상처가 생겼다.
처음부터 좀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었다.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좀 우리 멍뭉이한테는 안 맞는 느낌이기는 했었는데
잘하고 다녀서...
늘 해도 별 불만 없어서..
불편하면 안 하려 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에
늘 하고 다녔는데
버클 닫는 부분이 많이 부었더라고..
처음에는 뭐지?
한참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했는데 보니까 그거인 거야..
하네스 버클 닿는 부분
어제야 발견했어.
그리고는..
하네스하나 새로 사야겠네 하고 있었는데
오늘 오전에 집을 좀 비우고
점심 먹고 들어와서는 땅이 젖어 산책도 못 갔는데
저녁 먹고 나니 그곳에 상처가 생겼네.. 아마도 발톱으로 긁은 거 같어.
뭔가 깜짝 놀라 한참을 들여다 보고..
상처부위 털 잘라내고 연고 발라주고...
했는데 아픈 모양이다.
한동안 내 옆에를 안 오더라고..
저런 거 보면 통증에 둔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동안
불편해하는 걸 깨닫지 못했을까..
아님 요 근래에 두툼한 옷을 입히면서
옷과 하네스와 마찰이 생겨서 그랬나.
아니면.. 옷을 입혀서 하네스가 좀 작았나...
미리 불편함을 알아채지 못한 게 정말 미안했다.
하네스 좋은 걸로...
가슴둘레 확인해서 브랜드 제품으로 다시 주문하고..
진작에 좋은 거 사 줄걸...
꼭 이렇게 늦게 후회한다..
제로콜라 한잔과 깊어가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다.
창 밖에서는 고양이 야옹 거림이 가만가만 들리고....
멀리 빼꼼히 열린 두 개의 방문 너머로는 남편 코 고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더 아주 아주 가까이에서는
오늘 밤도 같이 있어줄게.... 라며 계절도 없이 속삭이는 귀뚜라미가
귀뚜르르 귀뚜르르 속삭인다.
김여사 참 좋겠다.
외로울 틈이 없어서...
그나저나 엄마 감기는 후딱 떨어져야 할 텐데
목소리가 더 안 좋으시더라고....
아플 때 누룽지라도 끓여 줄 사람 있음 참 좋을 텐데...
엄마는 입맛 없어서 밥에 김 싸 드셨단다..
김은 소화도 잘 안되는데 말이다...
엄마 밥이라도 푹푹 끓여 드시지... 했지만..
어디 아프면 그런가...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게 정석이지
옆에서 정성 들여 드시게 해 드려도 달아난 입맛을
되돌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말이다.
나의 어지럼증은..
나의 운전은 언제나 자유로워질까..
오늘도 그 어지럼증이 내 아주 가까이 있음에 치를 떨며
털어내고 싶지만..
그것마저 어디 내 맘대로 되는가 싶다.
어린 시절 새벽송 소리를 들으며 철없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두 손 잡았던 것처럼..
우리 엄마 감기 다 몰아 내 주기를...
어디 갈 곳 없으면 나한테 와도 좋으니 울 엄마 감기
이제 그만 떠나 주기를
간절히 마음으로 바라본다.
흔들리는 에탄올 난로 불꽃을 바라본다.
불멍보다는 찬 기운을 잡아내기 위해 피워 올리는 일이 많아진..
불멍난로가 오늘도 열심히 열정적으로 타오르고 있다.
오천 몇백 원어치 에탄올을 샀었는데 그새 바닥났어.
다행히 새로 주문한 게 도착하기는 했는데..
이 에탄올 난로 연료비도 만만찮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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