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우르르
하늘이 소리까지 내며 울고 있다.
분명 날씨 확인하고 이불빨래 돌렸는데
햇살이 밝아 너무 좋구나 하면서 꽃밭도 둘러보고
어제 그대로 둔 잡초도 몇 개 집어내고
부지런한 여자의 일상을 연출하며 바삐 움직였는데...
하나밖에 없는 동생옆지기의 생일이라
생일선물 하나 보내려고 메세지에 이렇게도 햇살 좋은 봄날~
하며 시작했는데 갑자기 어두워졌다.. 사방이..
그리곤 우르르 우르르 하더니 비가 내리네
가족끼리 추모공원에 간다더니 그동안 참고 계셨던 울음을
이제야 토해 내시나 싶기도 하다.
비 보다 천둥이 더 요란한 봄날의 비..
초코시럽 듬뿍 넣은 라테로 몸보다는 더 시린 손가락을 녹이며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우박이 두두둑 떨어진다.
진주 같아. 아니.. 어린 시절 남동생이 가지고 놀았던 유리구슬만 하면
큰일 나겠지.
무튼 작은 진주알 만한 우박이 비와 함께 내리고 있다.
이렇게라도 쏟아 내야 할 뭔가가 있는 건가. 하늘은..
아냐.. 뭔가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꽃밭에 비료를 살짝 뿌렸는데
하늘이 그걸로는 어림없다는듯이 온 세상에 비료 걸음을 주고 있다.
우수수가 아닌
타다다닥 타다다닥 소리를 내며 우박이 내린다.
어! 어제 심은 여린 내 꽃모종들은 괜찮을까?
오랜만에 쉬는 토요일 친구네 일 도와주러 간 남편은 괜찮을까?
비닐하우스 비닐 씌운다고 했는데..
아침 일찍 가기는 했는데 다 했으면 다행인데
아니면 난감하겠구나 싶다.
그런 마음이면서도 나는
비 내린다고..
해 뜨다가 갑자기 우박도 쏟아진다고
달달한 라테 한잔 앞에 두고 폰으로 노래까지 들으며
이렇게 룰루랄라해도 되는지 ㅎ...
세상 사 참 요지경이다.
우박이 꽃밭에 튀어 뒹구르르 굴러
비료 알갱이 같아. 진주알도 유리구슬도 아닌 하얀 비료알갱이..
인심 좋은 하늘이 봄에 용을 쓰며 싹을 틔우려고, 살아내려고 애쓰는 이 땅의 모든 것들에
영양제를 살포하고 있는 모양이야.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나는 왜.. 센티해질까...
비 때문인가..
여름에도 있을 수 있는 우박 때문인가...
그냥 그냥이겠지.
내 차가운 손이 커피잔의 온기를 다 가져와 버렸어.
커피는 식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아직 시려..
뒷집
아직 봄이 온 줄 모르는 느티나무 빈 가지에는 때까치가 주렁주렁
열매처럼 열려 있어.
제들은 요즘 뭐 먹고살까?
아직 마른풀대들이 많아 배 골치는 않는 걸까..
움직임이 참 자유로워 보여..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울고 우박이 간간이 쏟아져도 저 새들은
전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제들이 나보다 더 대담한가 봐 ㅎ..
부럽다.
행동도 빨라. 비 쏟아지는 소리가가 커지니 시선 살짝 거둔 사이에
한 마리도 없이 다 사라졌어.
째재재잭 소리는 들리는데 어디 숨은 걸까?
뒷집 처마 밑에라도 들어간 걸까? 거긴 고양이들의 영역인데....
천둥이 더 요란해졌어.
마치 여름 소나기처럼 비도 천둥도 요란해..
오늘은 이렇게..
아니 남편 일끝내고 들어올 때까지 이렇게...
아마도 빗소리나 들으며 꽁냥꽁량 내 마음이나 들여다 보고
있어야겠다.
빗소리가 참 좋다. 거기다 비에 관한 노래를 들으니 더 좋아.
혼자인걸 좋아하고 편안해하고 즐기면서
혼자인 게 우울하고 외롭게 느껴지고 스산하기도 한
이 이중성..
이렇게 비 내리는 날..
나처럼 비 좋아하는 사람 하나 집으로 불러들여
달달한 커피잔 사이에 두고 앉아 비도 보고 소리도 듣고
사는 이야기도
빗소리 중간중간 구음처럼 넣어가며 함께 할 누구 하나 있음
어떨까... 싶다.
딱 나 같지만
나는 아니고,
나는 아니지만 나인 듯 편안하지만
내 우울 한방에 날려 줄 유쾌함이 있는 누구..
내가 절대 아닌 타인 그 누구
그런 누구 어디 없을까?
아니..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누구인가....
비 온다.
빗소리가 더 커졌어.
커피는 식었고..
나는 더 이상 주절 거리며 토닥거릴 만한 것들이 바닥났어.
더 있다 해도 이제 그만 해야 해
청승도 넘치면 구질구질해지니까..
그냥 멍하니 빗소리나 들으며 뜨개질이나 해야겠다....
그게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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