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괜찮은 오늘 2024

봄날 아침

그냥. . 2024. 4. 14. 08:46

서부해당화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그 언저리 남편이 출근을 했다.

출근준비 하는 동안 귀는 깨어있고 몸은 늘어져 있는 

내게  아무런 마음의 걸림이 없다.

일상이 된 매일 아침의 풍경..

습자지에 물 스며들 듯 잠깐 잠에 빠져 들었다가 

창이 너무 밝아 눈을 뜨고 화들짝 놀라  텔레비전 밑에

있는 시계를 인상쓰며 들여다보니 

여섯 신가.... 여덟 신가.. 사십몇 분쯤 된 것 같아 화들짝 일어나 

안경 너머로 본 시간은 여섯시 삼십여분..

오늘은 일요일 딱히 할 일도 없고 정해진 일도 없고..

남편은 출근했고 날은 화창하고..

들고 있던 폰이 드드드드드 손바닥으로 진동을 전해진다

남편이다.

헛기침을 대여섯 번쯤 하고 전화를 받았다.

ㅎ... 일말의 미안함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보니 마음이 가는 녀석이 없다.

약 먹어야는디..

약 챙겨 먹듯이 밥 먹어야 한다고 했던 어느 분의 말씀이

요즘 자꾸 내 의무감 같은 식욕을 일으켜 세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엊저녁 끓인 찌개도, 그렇다고 혼자 먹으려

누룽지를 끓이기도... 싶어

라테 한잔 만들어 테이블 위에 남편이 어제 들고 온 카스타드 

빵을 먹는데 의외로 맛있네

아이들 어렸을 적에 군것질 거리로 사다 주던 것인데 말이다.

두 개나 까먹고

커피 잔 들고 멍뭉이 눈치 살피며 마당에 나갔다 왔다.

꽃밭의 것들이 자꾸 인사하자 한다.

어제보다 내 속눈썹만큼 자란 내가 심었고 나가 가꾸고 있지만

새싹으로는 도저히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것들과.

그래 너 너는 알아.

넌.. 에키네시아. 넌 베르가못 너언... 문빔 넌.. 플록스 

그리고 너는.. 세상을 등진 줄 알았던 빨강 수국 

올해 열심히 자라서 내년엔 니 진짜 모습을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도 되겠어.

그리고 너는... 으음.... 너는... 너는... 델피늄 같고...

넌... 작약.. 너도 세상 싫다가 가 버린 줄 알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키를 올리고 있네..

너는 너.. 너.. 너... 너도.... 애기 매발톱..내가 너는 쌍잎부터 알지~

ㅎ.. 매발톱 천지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분명히

풀은 아닌 꽃나무 새싹들..

내 꽃밭엔 아직 햇살이 귀하다.

하얀 장미조팝과 꽃 내리고 싱그러운 잎사귀 자랑하고 있는 명자나무

그리고 레드피그미산딸나무와

청보라색 매발톱과 절반의 라일락만이 햇살 품에 안겨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아직 싸아한 그늘...

햇살은 작아도 찬 바람은 많이 들지 않는 바람에게서는

요새 중에 요새

죽을지도 몰라 걱정하며 너무 빨리 자라서 꼬마를 만들어 놓은 자엽 안개나무가 

새 순을 쑥쑥 밀어내고 있다.

이게 꽃이야? 뭔 꽃이 이래. 지난겨을에 꽃망울이 냉해를 입었나

싶을 만치 꽃인지 꽃 진 자리인지 싶었던 레드피그미 꽃에 붉은 빛이 어제보다

다섯 배는 더 짙어졌다.

저렇게 꽃이 되어 가나 봐.

뻥 터트리면서부터 꽃인 꽃들과

봉우리를 터트려 햇살을 봐야 붉어지는 산딸나무인가 싶기도 하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아이이다.

산딸나무가 이뻐서 왜성으로 심어서 그런지 키가 그렇게 막 무지막지하게

크는 것 같지는 않다.

다행이다.

이 많은 나무들 중에서 제일 오래된 방울철쭉.. ㅎ..

집에 왔을 때 그때 그 모습..

살았으되 성장을 멈춘.. 

그래서 지난가을에 과감히 윗대를 잘라 버렸더니 

제법 실한 새싹들이 올라왔다.

올해는 좀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러고만 있다면

뽑아서 뿌리를 좀 정리하고 다시 심어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성장을 멈췄는데

뭐가 부족한지 어디가 불편한지 알 수가 없으니..

이것저것이라도 해 봐야지...

차가 프록스가 어제는 한 송이 피었는데 오늘은 서너 송이 

더 피었고,

서부해당화는 어제보다 더 옅어진 색깔로 흩어져 내리고 있다.

싱그러운 바람과 햇살과...

부드러운 라테 한잔.. 그리고 몽글몽글한 솜사탕 만한 마음 ..

꽃은.. 아니 마음으로 부담감 없이 무조건 기다리기만 하면

올 것은 오고 아니 올 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니 가는 지금

이 내 꽃밭에 둔 마음이 봄 아닌가 싶다.

나처럼 느려서 새싹도 꽃도 자람도 늦지만 

충실히 제 몫은 다 해내는...

기다림의 마음이 있다는 걸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내 꽃밭의 것들이 참 고맙고 좋다,...

세탁기가 일 다했어요~ 하고 나를 부른다

봄 햇살에 빨래도 맡겨야지.

봄 햇살에는 뭐든 맡겨도 될 것 같은 든든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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