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마악 시작될 무렵이였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어딘가 바람을 좀 쐬러 가고 싶은데 좋은곳 있음
추천해주세요. 했던 애청자에게 진행자가 추천해 주었던곳이
심포항이였다.
그날 이후로 난 몇번이나 심포항 심포항 노래를 불렀다.
우리집 남자 하는 일이
불규칙적이여서 바쁠땐 휴일도 없고 한가할땐
쭈우욱 늘어지는 일인지라...
바쁘다 미루고 춥다고 미루고, 눈이 많이 왔다고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해를 넘겨 버렸다고
우째 그럴수 있느냐고 같이 안가주면 나 혼자 가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늘어 놓으니 지난 일욜날 다짐한 날이
오늘이였다.
아침..
준비를 하면서 눈비비고 나오는 작은넘에게 같이 가자 했건만..
마악 일어나서 그런지 귀찮아 그런지 안가겠단다.
그래. 알아서 하라 하고..
네비가 가르쳐준대로 심포항으로 go go~~~
지도상으로는 쭈욱 금 그어 놓은것 처럼 보이는것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한시간하고 반정도 걸린 모양이다.
거기 심포항이라는 이름의 작은 항이 있었다.
겨울바람에 인적이 드문
바람만 가득하고 여기 저거 물새들이 유유히 파도를 즐기며
쉬어가는 배들이 사이좋게 어깨를 기대어 토닥이며 서로를 위로하는
겨울 바다...
오래된 눈의 질척이는 환영도..
아낌없이 불어와 와락 안기는 비릿함이 느껴지지 않는 바람도..
끼룩 끼룩 목청을 돋우며 반기는 갈매기도
철퍽 철퍽 겁없이 부딪혀 시퍼런 멍이 들어 달아나면서도
웃어주는 파도도..거기 그렇게 있었다.
즐거웠다.
행복했다.
'웃는 모습이 참 이뻐.' 우리집 남자의 뜬금없는
립써비스에 기분은 갈매기 따라 겨울바다 위를 날고...
돌아오는길..
김제 저수지가 품고 있는 하아얀 설원의 또다른 풍경은
또하나의 선물이였다.
좋다.
시끄럽지 않게
그냥 이렇게 조용히..나같은 내 남편과 편안한 마음으로
이렇게 느낄수 있는 시간들이 있다는것
참 감사할 일이다.
집에 돌아와 신발도 벗기전에 막둥이 묻는다.
'엄마 뭐 먹었어.'
'왜?'
조개구이 사주겠다며 꼬셨는데 안넘어 가더니 겨울바다 보다는
그것이 더 아쉬웠던지 다시 묻는다.
'뭐 먹었어어.'
'뭐 먹었음 뭐하게에. 같이 가자니까. 안가고는..'
'엄마. 회 먹었어?'
'어. 회 먹었어. 그것도 자연산으로다가..'
'엄마 전복도 먹었어?'
'아니 전복은 안먹었어.'
'엄마 진짜로 회 먹었어?'
'그럼 진짜지 가짜냐.' 옆에 있던 우리집 남자도 약을 올리고..
'아~ 따라 갈껄...'하는 아들넘 얼굴에 맛난 자연산 회에 대한
아쉬움이 뚝! 뚝 떨어진다.
사실..
ㅎㅎㅎ
돌아오는길에
어제 못먹은 순대국 한그릇씩 먹고 왔다.
조개구이라도.. 매운탕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텅빈 심포항의 그 어느곳에 자리잡기 어색하기도 했지만..
유난 얇게 입고 가신 우리집 남자
추워 죽겠다며 서두르는 바람에
서둘러 바다하고 작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덕에..
따듯한 봄이 오면 다시 오자는 약속을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