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10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냥. . 2010. 2. 19. 19:55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마자

거실 불부터 밝힌다.

하아얀 꽃등에 여섯개에 삼파장 램프가 꽃술처럼

들어 있어 그중 다섯개가 뽀오얀 빛을 품어 낸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도 티비는 대부분 켜져 있을때가 많다.

그 앞에 사람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집안에 너무 조용하면..왠지 좀 무섭다는...

가끔은 고요가 나를 삼켜 버릴지도 모른다는

어의없는 생각에 티비라도 켜 놓아 정적을 깨트린다.

오후 여섯시가 넘으면...보일러가 신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방 네개에 거실까지..

뜨끈뜨근은 아니여도 냉기는 없다.

울 아버님..

가끔 우리 사는게 궁금해서 하늘나라에서 놀러 오시면..

아마도 혀를 내두르시지 않을까...싶다.

요것들이 내가 없다고 펑펑 쓰고 사는구나...하실꺼다.

울아버님은 근검절약의 표본이셨다.

나 시집 올때쯤 자외선 식기 살균기가 유행이여서

사들고 왔었는데

어느날 아버님께서 그러셨다.

'야야 저것을 꽂아 놓아서 그런가 전기 계량기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그 뒤로 살균기는 식기 보관함이 되었었고, 머지 않아

주방에서 퇴출 당했었다.

저녁에서 거실엔 티비 말고는 형광들이 불을 밝히는 날은

거의 없었다.

손님이 오신다거나...

뭔가 하실일이 있지 않는한 거실은 늘..어둠의 동굴속이였다.

울어머닌 지금도 방에 들어가시면 티비만 켜놓고 계신다.

한밤중에도..

그러다 아들이 들어가며 불을 켜면서 한마디 하면

암것도 안하고 누워서 테레비 보는대 무슨 불이 필요 하냐 하신다.

보일러는...

아버님 맘대로...

시간을 맞춰 돌아가는것도 아니고, 난방수 온도로 조정되어 있는것도

아니고..

아버님이 주무시다가 한번씩 돌리고..

또 끄고 그렇게 하셨었다.

거실은....명절때나 미지근하게 불이 들어오는 정도,

그래서 난..겨울이면 늘~

방안에서도 양말은 두세개씩은 껴 신고,

털실래화야 패딩 조끼나 점퍼까지 입고 살았었다.

청소기 또한 명절때 동서들이나 와야 돌려보는..

그랬었는데....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아들들 아파트 사주시고

차까지 뽑아 주셨다.

우리집 남자 내가 우리 마누라 다른건 못해줘도 그 두려워 하는

추위는 좀 잊으라고 따듯하게는 살게 해준다고

3년전쯤 연탄 보일러를 기름 보일러 옆에 들였는데

그것이 여간 귀찮은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연탄은 천덕꾸러기고

기름 보일러만 신나게 돌아간다.

 

아버님~

저희가 너무 대책없이 쓰고 사는거 같아서

마음이 안놓이시죠~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님 아들 잘 아시잖아요.

아버님을 제일 많이 닮은거..

 

혼자 거실에 앉아 다섯개의 삼파장램프가 품어내는

빛을 감당하느나 내 어깨가 버겁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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