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10

엄마..

그냥. . 2010. 9. 7. 21:55

 

 

고추가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어서 엄마네 가지러 갔다.

남편이 차 엉덩이를 친징집 대문으로 들이 밀며 차를 대고 있는데

엄마가 나오신다.

아까 아까부터 대문밖만 내다보고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왜 이렇게 말랐어. 엄마.' 첫마디를 불퉁거리며 내뱉었다.

'여름이라 땀흘려서 그려야. 시원해지면 괜찮어.' 엄마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오늘은 어쩐 일로 집에 계세요?' 남편이 물으니..

'집에 있어도 바쁘제에..어제 따서 널어놓은 고추도 골라내야하고

자네도 날마다 바쁘지?'

마당을 들어서니 빠알간 다년생 이름을 알수없는 꽃이 마당에 한가득이다.

윗마당엔 어느새 배추와 브로콜리, 양배추까지 이뿌게도 심어 놓았다.

부추꽃이 한아름 가을 하늘아래 흐드러지게 피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혹시나 사위 더울까 선풍기부터 돌리고...

병원이라고는 죽어라 싫어하는 엄만데 점심때 드시고 체 정리하지 못했는지

약뭉치가 한아름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화가 불쑥 치밀었다.

'뭔 약이여! 어디 아퍼?'

'여름이라 그런가 어째 온몸이 바글바글 해야...'

'하이고 엄마는 그러면서 고추농사는 무슨...제발 그만 좀 하면 안되야?

폭폭해 환장허겄네.'

'폭폭하기는 뭣이 폭폭하다냐. 고추농사도 안 지으면 새털같이 많은날

하늘만 쳐다보고 산다냐. 걱정마라 엄마가 하면 얼마나 더 하겠냐..'

커핏물을 올리려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리며 냄비를 열어보니

비어 있다.

그냥 비어 있는게 아니고 언제 국이나 찌개를 끓여먹었는지 알수 없을만치

뽀드득 소리가 날만큼 말라 있다.

냉장고를 열어봤다.

쎄에한 찬바람만 가득하다. 속이 상했다.

'엄마..뭐랑 밥먹고 살어?'

'엄마 잘 해먹고 살어야~'

'잘 해먹는데 이렇게 냉장고가 비었어? 일하느라 땀도 많이 흘리면서

잘먹어야지이...' 말로만 되풀이할뿐 나는 오늘도 돼지고기 한근 안 끊어 갔다.

더 오래 앉아 있고 싶었지만..

커피한잔 마시고 30분도 안 있어 일어나 나오는데 울엄마

'야야...니네 고추는 걱정 말어라. 엄마가 고추가루로 빻아서 줄텡게

한개도 사지 말어~'하며 우리 걱정을 한다.

내걱정 하지도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울엄마는 늘 내걱정이다.

 

울엄마 올해 고추농사 성적표...

지금까지 나간 고추가 8000원씩 320근

거기다 앞으로 주문 받아 놓은게 95근...

더이상 팔고 싶어도 없단다. 나머지는 여기저기 나눠줘야 하고,

김장해서 또 나눠먹어야 하고......

아마도 돈이되어 돌아온 고추보다 인심으로 여기저기 퍼주는 고추가

더 많지 않을까...싶다.

올해는....엄마가 주시는 고추 고맙게 받고..

톡톡히 쳐서 통장에 넣어드릴 생각이다.

엄마꺼는 늘 공짜라는 공식 이번부터 깰 생각이다.

 그리고 또하나...

작은 바램 하나 있다면...

단 며칠만이라도..

아니 단 하룻밤만이라도 엄마랑 나랑 둘이 한이불 덮고

불꺼진 방에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잠들어 봤으면....싶은..

그때가 언제였는지...기억이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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