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싫어하는것은 '버럭'이고,
나를 제일 주눅들게 하는것도 '버럭'이다.
그래서 나는 '버럭'에 굉장히 민감하다.
어제 배추를 한아름 얻어놓고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얼갈이 4키로 한단에 도매시장 경매가로 만원까지 나온다는디..
서너단은 족히 얻었으니 얼마나 좋아.
마저 마무리 해야 할 일이 있이서 잘 두었다가 내일이나 담아야지..했다.
'여기다 둬도 괜찮냐?'
배추를 내려 놓은 처마밑에 서서 남편이 한마디 한다.
'어..여기 그늘이잖어. 금방 해도 떨어질꺼고......내일이나 담아야지.'
'내일 담는다고? 누렇게 다 뜨겠다. 날이 이렇게 더운디....'버럭 목소리에 감정을 실었다.
'아녀. 금방 밭에서 뽑아온건데 뜨기는 괜찮을꺼여. 그리고 어디 그렇게 김치
담그는 일이 뚝딱 해서 되는 일인줄 알어?'이미 마음은 작은 폭풍이 일고....
'이제 여섯시도 안됐잖어. 김치 담그는데 얼마나 걸리는데.'
'이제 다듬어 간절여 적어도 서너시간은 걸려...'
'그럼 10시면 담겠구만..' 귀하디 귀하신 배추 혹시 상할까 강요하는 목소리에도 역시
버럭 감정이 섞여있다.
'열시 넘어 나한테 김치 담그라고? 내가 무슨 로보튼줄 알어.' 목소리가 떨리고 울음이 섞여
터저 나왔다.
갑작스런 내 반응에 깜짝 놀란 남편의 눈이 토끼눈처럼 똥그래지고 어이없다는듯
'왜. 뭐. 내가 뭐랬다고....'
'......................내가 알아서 할텡게 가서 일이나 마무리 짓던지 어쩌던지 할일 해.'
터저나오는 울음을 꾹 누르며 말핬더니 우리집 남자 서둘러 자리를 피해 버린다.
'버럭..'
그 버럭이 나는 싫타.
정말이지 싫타.
특히 남편이 버럭 하면 서운함이 옹달샘처럼 퐁퐁퐁 솟아난다.
다듬어 절이고 마늘까고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다 했냐?'
'뭘 다해. 이제 간절여 놨구만.'
'다 했구만 도매시장 같이 가자.'
'이제 시작이거든요. 아저씨. 양념 준비 안해? 혼자 다녀오시고, 당근이나 좀 사와' 했다.
김치가 무슨 나물 무치는것도 아니고 간절이는걸로 다 했다고 생각하다니....ㅠ.ㅠ
김치 담글 준비하면서 저녁 챙겨 먹고.....
티비앞에 앉았는 남편에게 가서 ' 마늘 깔래요? 빨래 정리 할래요?' 했더니
마늘~ 하길래 까던 마늘 남편에게 물려주고...
이래저래 김치 버무리고 나니 열한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들 마중나간김에 소주한잔 하자며 사온 순대에 소주한병과 맥주캔 하나를 나란히 놓고
앉아 마시며....
'내가 뭐랬다고 아까. 너. 왜 울라그래? 어!'
'버럭 화냈잖어.'
'화 안냈거든.'
'화 내셨거든요.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서 버럭.'
'나 원래 목소리 커. 내가 너때매 아주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무슨...김치 담그는게 뚝딱 되는게 아니거든요. 당신은 뚝딱 되는 줄 알지?'
'긍게..한시간이나 한시간 반이면 되는줄 알았드니 그게 아니긴 하네 오늘 보니까.'
'그게 어떻게 한시간 반안에 되. 준비해야하는 양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잖어.
당신이 버럭~ 만 안했어도 내일 좀 여유있게 시작하려고 그랬지이.'
'그럼 그렇게 말을 하지 그럼 그러라 했을텐데..'
'당신이 이미 버럭 화를 냈잖어.'
'화 낸거 아니라니까...나 원래 목소리 크잖어.'
'원래 크지. 그치만 목소리 큰거하고 버럭!하고는 다르거든..'
'내가 너때매 못살겠다. 성대 수술을 하던지 어쩌던지 해야지....왜 그렇게
목소리 톤에 예민하냐?'
'버럭 대마왕 아래서 주눅들어 살아온 세월이 많아서 그래..'
'그 예민함 좀 버려라. 이젠 안그러시잖어.'
하지만....
말이 쉽지...
난..
버럭.이 싫코 무섭고 겁난다.
울엄니...
버럭 대마왕이셨다.......
난 그 버럭에....엄마 돈 훔치다 걸린 초등학생처럼 어깨 움츠려들고 자라목이 되고......
기 파악 죽어 처분만 기다리는 초딩처럼..
지금은 물론..
예전같은 절대적인 천적은 ㅎ..아니지만..
난..지금도 버럭이 너무 싫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