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22(쉬운 나이)

김장

그냥. . 2022. 11. 20. 22:41

티끌하나 없는 엄마의 마당 수돗가에
절여져 씻겨진 배추들이 비닐 망또를 쓰고
빨간 모자에 황금 모자를 겹쳐 쓰고 있다.

어제 엄마네 김장하러 갔다.
금요일에 가려고 했었는데..
남편도 출근 아들도 출근...
물론 시외버스 타고 몸만 가서 마트 들렀다
가면 되기는 하지만..
자가용에 길들여진 몸이라 귀찮은 마음도 있고
부실한 척하는 몸도 있고...
그래도 가야지 했었다.
김장은 2박 3일..
간 절이고.. 씻어 건져 물 빠지게 두었다가
그다음 날 버무리는 걸로...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김장 당일날 오란다.
일찍 오면 일 많이 한다고..
뭔 소리야. 엄마 일이 많으니까 일찍 가야지 했더니
아주머님들끼리 품앗이해서 하는데 사람 많으니
안 와도 된다고...
일하고 아프면 어쩌냐는 엄마의 말...
기차 타고 서울도 가믄서..
왜 버스 타고 엄마네는 어려운 건지 나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서 하루 건너뛰고..
토요일에 아들 쉬네 데려다 달라고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아들은 뭔가 좀 어렵다..
그런데 다행히 남편이 토요일에 쉰다고 해서
어제 갔다.
나하고 김치통 하고 수육 할 거리하고 감 한 박스 등 등만
내려놓고
남편은 되돌아 집으로~ 다음날 와서 심부름하기로 했다.
그렇게 씻고 다듬고, 썰고
다행이다 싶었다. 다 미루지 않고 이 많은 일들을 엄마랑 같이
할 수 있어서
아님 엄마나 동네 아주머님들이 늦은 오후까지 함께 하셨어야 할 일이니 말이다.
사실은..
그만 김장은 내가 해 먹겠다고 했었다.
언니도 언니가 해 먹고...
동생네는 전라도 김장김치가 좀 부담스럽다고 올 해부터는 사 먹겠다고 해서
결국은 우리 때문에 하게 되는 김장인 것이다.
그러니..
치과 다니느라 바쁘기도 하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드시니 내가 절임배추 사다가 하겠다고 했는데
엄마는..
엄마 해 먹어야 하니 하는 김에 하는 거라고..
그렇게 엄마 마음을 밀어내지 못했다.
엄만 혹시라도 딸내미 아플까 봐 전전긍긍...
본인 몸 망가지는 거는 생각 못하고... 엄마보다 스물 하고도 다섯 살이나 어린
딸 걱정이 초저녁 달그림자 보다 더 길다..
바쁘게 움직인 엄마가 열 시쯤 잠이 드시길래
텔레비전 끄고 엄마 옆에 누워 좀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는데....
깼다. 주책없이..
자정이 조금 지나고 있었다.
엄마 깰까 봐 뒤척임도 최소화
잠은 안 오고 생각은 꼬리 연처럼 길게만 이어지고....
폰을 슬그머니 들여다보는데..
엄마가 안 자냐? 하고 깨셨다.
아니.. 자다가 깼어. 잘 거야..
폰 끄고.. 다시 눈을 감았지만..
남편 코 고는 소리가 없어서인지..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엄마의 거친 숨소리가 신경 쓰여서인지..
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달아난 지 이미 오래...
잠이 안 오니 화장실은 더 가고 싶고
폰은 더 궁금하고..
배터리는 달랑대고...
폰 충전기에 꽂으며 화장실 슬그머니 다녀왔는데
엄마가 또.. 아이고... 왜 안 자고 그래....
아니야 엄마 화장실 갔다 왔어..
왜 그렇게 잠을 못 잔다냐....
아녀 엄마 자다가 깼어..
그렇게 그렇게...
곤히 주무셔도 피곤할 엄마는 나 때문에 몇 번을 더 깼다.
뒤척이다가 스르르 깜빡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남편 전화..
여섯 시 반.. 지금 출발할까?
아니야.. 일곱 시 넘어서 출발해도 돼~ 하고...
엄마는 벌써 일어나 있었는데 딸랑구 이제 마약 잠이 드는 거 같으니
깰까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가
사위 전화에 일어나 움직이시며..
너는 조금 더 있다가 나와할 일 없어~ 하시는데...
밤새 불면과의 익숙한 데이트에 좀 몽롱하기는 했지만 벌떡 일어나
움직이는데
왜.. 엄마 잘 때 못 자고 일어나야 할 때 졸리고 난리인지..
왜.. 엄마 집에까지 엄마 걱정하고 새벽에 혼자 노는 게 그렇게
좋았는지..
안 그래도 늘어지는 걱정...
잠을 안 자...
잠을 못 자냐.. 는 엄마의 걱정을 들어야 했는지...
나는 익숙한데 엄마는 걱정이되는 이런 상황...
김치냉장고 절반만 채울 생각이었는데..
엄마의 큰 손에 냉장고가 빵빵해지고..
그래.. 올해가 마지막이야..
엄마 내년에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했더니..
그럼 이 좋은 텃밭은 어쩌라고 놀리랴! 하시는..
많이 해야 3년이야 하는데 어이가 하나도 없다.
또 엄마한테 지고 말까?
아니야..
언니나 동생처럼.. 딱 끊어야 해..
그래야 엄마가 편치..
남편이 그런다.. 집에 오면서..
어머니는
처형은 일 많이 한다고 걱정...
너는 몸 아프다고 걱정.. ..
처남은 처남대로 또 걱정..
걱정이 발등을 찧더라
그러게 말이야.
안 그래도 되는데 왜 그렇게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자식들 안 좋게 이야기하시는 거 보다는 괜찮잖아.
그러긴 하지..
근데...
난 내가 그렇게 비실 거리거나 문제 있다고 생각 안 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걸까? 내가 그렇게 문제 있어 보여?
아니야.. 너 괜찮아.
그냥.. 걱정하는 마음들이 많아서 그래
그렇지.. 근데 그런 걱정들이 나를 자꾸 위축시키는 거..
그들은 모르겠지.
마치 정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 같을 때가 가끔 있거든..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네가 제일 잘 알고 내가 알잖아.
말해주는 남편이 있어 든든했다.
울 엄마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거고..
언니나 동생은 가끔씩 흘려듣는 말들에
걱정이 보태어져 눈으로 보는 거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하는 것뿐이라는 거...
그나저나.. 토요일 일요일 운동은 못 갔다.
휴일에도 생활체육센터가 오픈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일부터 또 열심히 살아야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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