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괜찮은 오늘 2024

ㅡ엄마를 이길 수는 없다.

그냥. . 2024. 11. 13. 22:04

나른한 피곤함이 밀려온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엄마네 시시티브이로
엄마의 동태를 살폈다.
아침 먹으며 들여다보니 엄마가 마루 창문을 열고 나와
대문을 여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고 계신다.
그리곤 여기 저기 무언가 찾으시는 듯 두리번거리시더니
장갑을 찾아 끼고는..
내가 엊저녁 잠을 설쳐가며 걱정했던 
토방에 흐트러진 콩깍지를 쓸어내면서 떨어진 콩들을 줍고 
계신다.
아... 저거였구나.
일이 늦어져 어두워져서  콩깍지 사이에 흩어진 콩들이 보이지 않아
토방을 어질러진 채로 그냥 두셨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울 엄마가 저렇게 토방을 어질러진 채로 방안에 들어갈 분이 아닌데
하며 괜한 소설을 썼었다.
구석구석 마당이 패일 것 같이 깔끔하게도 쓸어내신다.
마당 쓰는데 족히 삼십 분은 더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는.. 마대 자루를 펼쳐 놓고 콩을 펼쳐 햇살아래 내어 놓으셨다.
병원 다녀와서 다시 들여다보니
엄마는 그때까지도 토방에서 무언가를 하느라 분주하셨다.
저 작다면 작은 텃밭에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아 한 나절을 다 보내고
점심때도 한 참 지났는데 저러고 계실까.. 싶었다.
이것저것 좀 하고..
병원 다녀와서 피곤하다고 한 잠 주무시고 나서 다시 들여다보니
엄마가 안 보이신다
전동차도 있는데 동네에 나가셨나 보다... 싶었다.
시시티브이 속 엄마는 어느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데에
한숨 돌리고....
저녁 먹고 전화를 했다.
딸~ 하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게 나를 부르시는 엄마 목소리가 아니다..
어.. 
엄마 저녁 먹었어?
먹었지..
엄마 하루종일 마당에 계시데..
꽁 깍지도 좀 까고 마당도 좀 쓸고 하니라...
엄마 김장 날짜 바뀌었어? 언니가 바뀌었다고 하던데..
시니어 일자리서 전화 왔는데 이러쿵저러쿵..
엄마.. 화 많이 났어?
화나지 그럼..
엄마 화내지 마.. 엄마 화내니까 무서워.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럼 화가 안 나게 생겼냐?
텃밭에 배추는 동네에 팔아라 하지 김장은 직접 한다고
절임배추 샀다고 하지 네 언니는 또 내려온다고 하지..
엄마 나는 엄마가 허리도 안 좋고 어깨도 안 좋으시니까..
엄마 생각해서 그랬지..
엄마 생각하는 게 그거냐 엄마가 할만한다니까 하는 거지
청댕이떡이나 신탱이 떡처럼 아주 못쓰게 생기면 
해 달라고 해도 안 해 
아직은 할만하니까 하지..
김장철 딱 닥쳐서 김장 안 한다고나 해 싸 코..
엄마..
그러니까 나는 엄마 생각한다고 그런 건데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했네
엄마 화내지 마 엄마가 화 내서 내가 하루종일 시시티비로 엄마 눈치를
얼마나 본 줄 알아?
..................................
...............
한참을 이야기하고서야 엄마의 목소리가 풀렸다.
나..
나는..
엄마가 화난 게 무서웠다거나 서운한 게 아니었다.
엄마 화내는 모습을 언제 보고 안 봤는지 
어렸을 적에는 많이도 혼났지만 시집온 뒤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통화하다가 전화 먼저 끊어 버리고
전화도 안 받아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엄마가 아닌 낯선 사람이 느껴져서..
엄마가 낯선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데 나만 몰랐었나. 싶어서..
그래서 종일 시시티브이로 엄마를 살피고..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울 엄마가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긴장이 풀린..
엄마 목소리가 풀리니.. 피로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나는 역시 엄마를 이길 수는 없다.
그냥 엄마 하자는 대로 해야지 싶다.
엄마가 저렇게 원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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