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10

가끔은..

그냥. . 2010. 8. 5. 21:39

가끔은 화(火)가 사람을 기운나게도 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방학했는데도 뭐 하나 제대로 신경써주지 못한것 같아서

늘 미안했다.

아침은 늘 아이들 일어나기 전에 나가야 해서 어머니가 챙겨 주시는데..

어머니도 아침은 바쁘신지라 아무리 손주아침상이래도 내가 차려놓은 식탁에

밥만 담아 먹게한다.

어느날 큰넘 '엄마 아침에 밥먹을게 너무 없어...'하는데 맘이 짠했다.

방학중에 학교 다니는것도 고생인데 아침 그 입맛도 없는 밥상에 앉아

밥만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는 모습이 안봐도 보였다.

잡채나 해줄까?

메추리알조림 잘먹던데 그것도 좀 하고..

며칠전부터 마음 먹었지만 늦은 저녁을 준비하다보면 난 늘 지쳐있었고..

늘 바빴다. 핑계겠지만..

오늘은 오후 이글거리는 태양에 나가는걸 포기하고 저녁을 준비했다.

그동안 마음 먹었던 메추리알 장조림도 하고, 잡채도 버무리고...

꼬리고추도 볶아야지 맘먹고 있는데 울엄니 불고기가 드시고 싶단다....

잡채는 참..손도 많이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장조림도 마찬가지..

거의 두시간 가까이를 가스불 앞에서 종종거렸더니 기운이 쫘악

발가락사이로 빠져나감을 느꼈다.

상추 씻어 불고기 올려놓고, 잡채랑 메추리알 장조림이랑

올려놓고 어머니랑 남편 식사하라하고는 방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등줄기로 땀이 얼마나 많이 났는지

옷이 축축히 졎었다.

아...지쳐...

이 여름은 그냥 간단 간단하게 해먹는게 최고라는 생각..

선풍기 바람에 땀 식히고 있는데 우리집 남자 방으로 들어오며

'다먹었어' 하면서 선풍기 앞에 버티고 있는 내가 나와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그냥 그대로 누워 있었더니 '다 먹었다니까. 좀 나와봐~' 하는게 아닌가..

'아...힘들어. 설거지 좀 해주면 안될까?'

'...............'

못들은척 한다.

맨날 부탁하는것도 아니고....서운한 마음이 불쑥 들었다.

벌떡 일어나 나오면서 한마디 했다.

'마누라는 밥 먹으라는 소리도 안하고 자기만 먹냐 어떻게..'

'먹기 싫은가부다 했지..'

'그래도 말이라도 해야는거 아니야. '톡 쏘아 붙혔더니..

'미안...밥하고나면 입맛 없어하잖어. 이따가 먹으려나부다 했어. 너 종종 그러잖어.'

주방에 나와보니..

정말이지 꺽정스럽다. 널려있는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들이

왜 그렇게 꺽정스럽게 느껴지던지.....

'뭐 말로만 맨날 고생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러면 뭐해.

이럴때 설거지 딱 한번 해주면 얼마나 좋아.

말루만 얼굴이 반쪽이네 살이 많이 빠졌네 그러지 말고

맛날걸 좀 사주든지....툴툴투두둘.......'

혼잣말을 물소리에 섞어 흘러 보내며 중얼거리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원래 그런사람인거 몰랐니? 원래 니 신랑 그런 사람이야.

자기가 해주고 싶어야 하는...다분히 가부장적인..

누가 잡채하라고 했어? 누가 올여름들어 최고로 더운날 장조림 하라 했냐구.

지가 해놓고는 누구한테 짜증이야..' 싶은것이..

ㅎ...

김여사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춤까지 추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것이다...

 

암튼...

삼시세끼 밥 차려내는 일

우리집남자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거 같은데..

정말이지..........당연하게 생각하면

섭하거든요~

 

아..

꽈리고추는 볶지도 못했다.

물끼 빼서 냉장고 행~

내일이나 해야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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