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2020 145

산책

날마다 다니는 길 날마다 맞는 냄새 날마다 하는 영역 표시 뭐가 다른 건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국수는 날마다 신기하고 날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산책 길이다. 나는 6,700에서 7,000보 정도 되는 4km 이상 되는 저 길이 걷는 일은 하루 일과 중에 하나다. 내겐 7,000보쯤 되겠지만 저 아이에게는 만 오천 보쯤 되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더 되겠지. 그래서 그런지 저 아이 다리 근육은 말근육 부럽지 않다. 요즘 부쩍 많아진 물오리들이 한가로이 유영을 즐기고, 마른 억새가 바람에 살랑이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이팝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는 저 산책로.. 그래.. 이 동네에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진 않아. 아니 괜찮은 거 같아. 그냥.. 내가 이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할 뿐이지 살기는 괜찮은 거..

털빨~

포송 포송 보송이에서 털옷을 시원하게 벗어 버렸다. 아니 벗겨 버렸다고 해야 맞다. 이 늦은 가을에 시원하게라는 단어가 어디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뭔가 불쌍한 표정으로, 뭔가 불만인 표정으로 노려보는 저 아이는 지가 왜 이 추운 날에 이렇게 털옷을 벗어던져야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좀 답답하고만.. 말 잘 듣는다. 아니.. 이제는 아는 것이지. 잡혀 상자 안에 앉혀지게 되면 아......털이 밀리거나 발톱이 잘리거나 아니면 둘다 해야 하거나.. 제법 미용은 잘 한다. 다리에 클리퍼 닿는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거기서 달래가면서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4년 차 반 애견 미용사? 는 흐흐흐... 스스로 제법 만족하며 저 아이 전용 미용사 노릇을 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뭐..

바다는 늘 좋다

어느 해였는지 어떤 계절이었는지 어느 바닷가였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다. 어쩜 이렇게 기억이 없는지 신기할 정도다. 제주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풍경 안에는 시선이 머무를 수 있는 피사체가 있어야 하나 봐 누군가 저 안에 있었다면 저 바닷가에 대한 추억이 이렇게까지 없지는 않았을 텐데 싶다. 좀 더 석양이 짙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 노을이 짙은 바닷가를 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 아니 그보다 더 걸어보고 싶다는 간절한 아쉬움이 있다. 아주 아주 오래전 고창 동호 해수욕장에서 봤던 그 깊은 노을을 잊을 수가 없다. 근데.. 그때 찍은 사진들이 안 보여 사라져 버렸어. 하긴 그때가 언젠데 싶기는 하다. 노을을 보고 돌아오기에는 우리 집은 바다와 너무 멀고, 그렇다고 날 밤새고 오기엔..

1년 반짜리 체기

뭔가 허 하다. 그래 허 하다고 해야 맞다. 그리고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옷을 껴 입고,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뜨거운 차를 마셔도 감해지지 않는 한기 체기가 화악 올라왔다. 꺼억 소리와 함께 속에 있는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 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행동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신경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차가운 사이다 한잔과 함께 밀려 나오는 꺼어억... 흐흐흐... 1년 반 동안 묵은 한숨처럼 밀려 나온다. 이제 끝인 것 같다. 더 가지는 않겠지. 그래 보였다. 어떤 이유인지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에 여기까지 왔지만 마지막 그자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 벌이라는 것이 죄에 비해 너무 깃털처럼 가벼운 것 같..

따듯한 둥굴레차와

따듯한 둥굴레 차와 내 엄지손가락 만한 고구마 새끼 먹고 있다. 열 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라 따듯한 것이 먹고 싶기는 한데 가볍게 먹고 싶어서 고구마랑 둥굴레 차를 먹고 있다. 맛나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던 엄마표 김장 김치가 간간하다. 아마도 얼마 전에 이를 하셔서 맛을 제대로 못 느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손도 까딱 안 하고 얻어먹는 입장에서 할 말은 없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러니 좀 낯설기도 하고... 짜다... 했더니 작은아이가 그런다. 외할머니라고 어떻게 맨날 맛있겠어. 그럴 수도 있지. 한다. 그건 맞는 말이지 김치 통에 무를 몇개씩 썰어 넣었다. 남편은 건들지 말라 하지만 간만 맞으면 엄마표 김치 맞을 되찾을 것 같아서 말이다. 동생네도 이야기를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

집에 그냥 와 버려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리 피곤한 거야 입이 찢어저라 벌리며 하품을 연신 해 대고 있다. 오전에 일 잠깐 하고 엄마네 김장하러 갈 생각이었다. 그전에 은행에 볼 일 있어 나갔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옆동네 코로나 떴다고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정말? 정말이냐고 했더니 동네 이름을 말하며 그렇다고 한다. 급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네 동네 바로 코앞 옆동네에서 코로나가 집단으로 나와 마을 전체가 코호트 격리되었던 곳이기도 하고, 시골 마을이 그렇듯이 엄마네 동네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신 동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못 간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김장이 어디 쉬운 일인가 말이다. 마을 몇집이서 품앗이 형태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나는 고기랑 과일이랑 사 가지고 갈 오래된 규칙이 있고..

뭔가..

어느새 열한시가 넘었다. 힘들다 힘들다 말로만 하고 내몸 혹사 시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니고 나라는 사실이 가끔은 한탄 스럽다. 한 가지에 꽂히면 끝장을 보고 마는 성격은 어디서 왔을까? 학교 다닐적에 공부에 이렇게 꽂혔으면 지금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습관처럼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이 돈 벌러 나가니까 나도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욕심 내지도 별로 고르지도 생각도 않고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그렇게 고향을 떠났고 직업을 선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고 또 얼마나 대책 없는 짓이었는지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생각이 정말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철없음 하고는 또 다른 막연..

아주 오랫만에

몇 년만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국수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마술 방석? 요술 방석인가 뭐 그런 거 만들어 준다고 재봉틀 꺼내고 집어넣었으니 만 4년이 다 되어 가는 모양이다. 가끔 바느질이 하고 싶어 졌었다. 손바느질은 답답하고, 손톱만큼 재봉질을 할 줄 안다고 손바느질이 좀 많은 양이면 늘 봉틀이 생각이 났었다. 그렇지만 쉽게 꺼내지 않은 것은 어깨에 너무 무리가 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아랫 바늘 땀이 이쁘게 나오지 않는 탓이기도 했다. 며칠 전 땀이 이쁘게 나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유튜브 찾아보고 원인을 찾았고,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는데 이래 저래 짬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 큰아이가 출근 준비를 하면서 엄마 수면바지에 구멍이 너무 크게 났어. 하는 거다. 수면바지는 이상하게 손..

내 눈엔 최고

미모 갱신하고 계시는 우리 집 어르신 미용사의 부드럽고 전문적인 케어는 딱 두 번으로 끝나 버리고 만 엄마 미용사는 그때 그때 달라요 실력이 아빠 배 위에서 꾸벅 꾸벅 졸고 계시는 아니거든 나~ 안 졸았거든 누구도 우리 어르신이 졸립다면 뭐랄 사람 없어도 졸지 않았다고 꾸역꾸역 우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졸음은 어찌하지 못하는 우리 집 최고 어르신 똘망한 눈동자 새카만 코 앙다문 입 눈곱은 기본~ 그럼에도 우리 집 젤 사랑둥이 젤 나이 어린 어르신

갑자기 겨울

11월 바람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던 어제의 그 바람은 간데없고 오늘은 오싹하니 춥다. 남편이 사준 플리츠 재킷을 입고 나갔다가 얼어 죽는 줄 알았다. 비 지나간 자리에 겨울이 성큼 다녀왔다. 오늘도 나는 생강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하나하나 흐르는 물에 씻어가며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껍질이나 미세한 흙을 찾아내어 칼로 긁어내는 일 또한 내가 요령이 없어서 그런지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런 거 보면 참 꼼꼼한데 다른 거 보면 또 참 많이 덜렁댄단 말이야. 얇게 썰어 채 치고.. 토종 생강이어서 그러는지 알이 작아서 껍질 벗기기도 쉽지 않았는데 채치는 것도 쉽지 않다. 오늘도 열시 반까지 씨름을 하고 씻고 들어와 앉으니 이 시간이다. 내일 나머지 채 치고, 그러고도 세월이다. 우리 막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