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날들/괜찮은 오늘 2024

어느날의 일기

그냥. . 2024. 12. 21. 22:47


해년마다 엄마네서 김장을 해 가지고 왔는데 며칠 먹는 김치도
맛이 오락가락하는 나와함께 남편이 다른 것도 아닌
김장을 직접 담아보자 했다.
엄마 연세도 있으시고 봄에 폐렴을 앓고 나신 이후로 기력이 예전 같지 않고
허리도 아프다 하시고 어깨도 안 좋으셔서 치료를 받고 계시는 까닭이었다.
언니나 동생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본인들이 해 먹는 김장을
나만 엄마가 붙들고 계시는 이유는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까
걱정스러우시다는.. 너 아프면 엄마 못 산다시며 젊은 딸래미
걱정을 밥 먹듯이 하시는 때문일게다
그러는 중에 엄마랑 통화하다가 김장 날짜를 잡아보자 말씀을 하시길래...
엄마..우리 절임배추 주문했어. 우리 김장은 안 해도 돼! 했더니
뭐라고? 마당에 배추 놔두고 배추 주문했다고야? 버럭 화를 내신다.
엄마 힘들잖어. 병원도 다니시고.. 그래서 올해부터는 내가 해 먹을께..
그럼 텃밭에 배추는 다 뭣헌다냐!
동네에 배추농사 잘 안된 집 있다며 거기 팔아.
배추를 동네에 팔아라고야. 니가 가져가서 전주에다 팔아라.
어디 동네에다 배추를 돈받고 판다냐.
그리고 지금 배추 없는 집이 어딧다냐. 주문 취소하고 여기서 혀어..하신다.
아니어 엄마. 엄마 아픈데 김장 보통 일 아니잖어. 그리고 언니한테도 동생한테도
내가 미안하지 내 나이가 몇인디 아직도 엄마한테 김장김치 얻어먹고 살아
한참을 실랑이를 했지만 내가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으니 엄마가
알았다. 전화 끊어. 하며 엄마가 먼저 전화를 끊어 버리셨다.
엄마가 이렇게 먼저 전화 끊는 일이 없었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남편이랑 상의 끝에 올해만
엄마네서 해 오기로 하고 전화를 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편했으면 해서 힘들까봐
엄마 생각한다고 그랬는데 올해만 같이하자 했다.
다음 날 저녁 언니 전화가 왔다.
엄마가 뭔가 화가 많이 났다고..
말도 잘 안하고 전화도 잘 안받더니
먼저 끊는다고 끊어 버렸다고 무슨 일 있느냐고..
아마 김장 안한다고 해서 그러나 보다고 했더니
아니 김장 안하면 편하고 좋지 그게 그렇게 화를 낼 이인가? 하는 언니 .
엄마가 화 많이 나셨구나 싶어 전화를 했다. 안 받으신다.
집 전화로 해도 안 받으시더니 다시 폰으로 전화를 하니 받으신다.
어 왜?
엄마 저녁 드셨어?
먹었어.
어디 아퍼?
안아퍼
엄마 목소리가 안좋네..
그럼 좋게 생겼냐? 배추는 텃밭에 있는데 김장은 안한다하지
큰딸년은 또 큰딸년대로 김장 하지말라고 그러지
엄마 생각해서 그렇지.
그게 엄마 생각하는 거냐? 끊어. 하고는 엄마가 먼저 전화를 끊으셨다.
엄마 맞나?
우리 엄마 맞아? 딴사람 같아..
목소리 톤도 말투도 모든게 너무 낯설었다.
언니한테 문자를 넣었다.
언니 엄마가 이상해..
왜?
낯설어 딴사람 같아... 겁나..
아니야 우리 엄마 총명해..
그니까 그런데 이상해..
서울 동생한테 통화 한 번 해 보라 그래 봐
해서 남동생에게 엄마가 좀 낯설다며 통화 한 번 해보라 했다.
그렇게 해서 남동생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기는 하네
뭔 일 있었어? 엄마 사기 당했나?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내가 김장 안한다고 했거든
화나고 서운할 수는 있는데 엄마가 아닌 것 같어. .
엄마 말투가 아니야. 엄마 목소리도 아닌 것 같고..
그니까 바쁘더라도 엄마 좀 신경써서 통화 자주 해봐
나도 그럴게..
알았어. 누나 별일 아닐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날 밤 엄마네 토방에 설치되어 있는
시시티브이를 바라보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시시티브이 앞에 정신어지렵게 거미줄이 반짝 거리고
토방에 널려있는 콩깍지들이 익숙치 않은 풍경이다.
아무리 늦어도 토방을 저리 두고 집안에 들어 가실 분이 아닌데...
정말 아프신가.. 밤 내 소설을 썼다 지웠다 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부터 엄마네 시시티브이를 보니
아직 닫혀있는 대문.. 토방에 널려있는 콩깍지.
걱정은 걱정을 먹고 자란다 했던가... 걱정이 불안이 되기 시작할 무렵 엄마가
시시티브이에 등장하셨다.
우선 대문부터 열어 놓으시고 장갑을 찾아 끼우시더니 토방에 빗자루질을 하시며
하나 둘 미쳐 골라내지 못한 콩들을 주워 내고 계신다..
아..저거였구나 어제 저녁에 어두워져서 흩어진 콩을
주워내지 못하셔서 그래서 토방이 어질러져 있었구나...싶으니 마음이 놓였다.
오전 내내 엄마를 감시했다.
마당에 앉아서 토방에 앉아서 잠시도 쉬지않고 뭔가를 하시며 움직이신다.
오후에는 엄마가 보이지 않아 아마도 마을 회관에 운동하러 가셨나 싶었다.
그리고 또 밤..
잔뜩 긴장을 해서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어 왜.
세상 반갑게 받아 주시는 딸~ 하시는 다정함은 없었다.
엄마 저녁 드셨어?
먹었어.
엄마 아직도 화 났어?
그럼 화 나지 않나냐! 김장철 다 되어 김장은 안한다 하지
배추는 동네에 팔아 버리라 하지 큰딸년도 덩달아 잔소리지
엄마 나는 엄마 생각해서 그랬지.
엄마가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안좋잖어.
그래서 엄마 생각한다고 그런건데 내가 잘못했네 엄마
그만 화 풀어. 엄마 화 내니까 무서워.
엄마가 못하게 생겼으면 해달라고 해도 안해.
나보다 더 꼬부랑 할매들도 김장들 하느라 동네가 뒤집어졌는데
어차피 엄마 하는 김에 같이 하는데 그걸 두 딸년이 못하게 하니 화가 나지..
엄마 그래서 전화도 안 받았어? 엄마 화 내지 마.
안그러던 엄마가 그러니 딴사람 같아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긍게 그게 엄마를 생각하는 게 아니랑게 봐라 어차피 너도 삼일은 와서 같이 하고
동네 어른들도 둘은 올껀디 암것도 안하면 그게 죽은 목숨이지 산 목숨이냐?
알았어 엄마..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해서 2박 3일은 낯선사람에서 우리 엄마로 돌아왔다.
주말 맞추어 날짜를 잡아서 언니도 내려와 함께 해 주어서
다른 해 보다 훨씬 수월하게 김장을 마쳤다.
엄마네 김장 처음 같이 한다는 언니는 내년에도 내려오겠다고 하고..
엄마는 인제 하지 말라는 말 하지 말라며 못하게 생기면 본인이 말씀하시겠단다.
엄마가 그만하셔서 엄마가 나보다 더 총명하고 현명하셔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화 내시는 걸 단 한번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는 잔소리 폭격기라 생각했는데
엄마는 늘 다정하고 따듯한 분이셨다는 것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찌 그리 수십년을 한결같으실 수 있으셨을까?
이제 남은 것은 내가 건강해져서 엄마가 봐도 누가 봐도 딸 걱정 이제 안해도 되겠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늘 불안할테니
그 불안을 없애주는 것이 김장 내가 할게~라는 말보다
천 배는 더 효도하는 일이겠지 싶다..
난 오늘저녁도 엄마표 김장김치에 수육삶아 맛나게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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